글로벌 선박 '보편 탄소세'에서 '부분 탄소세'로 후퇴, 한국도 대응 과제 남아

▲ 국제해사기구는 11일(현지시각)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를 열어 국제해양오염방지협약 6번 부속서를 개정해 '부분 탄소세'를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사진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국제해사기구(IMO) 본부에서 회의가 열리는 모습. <국제해사기구>

[비즈니스포스트] 국제해사기구(IMO)가 일부 국가들의 압박에 모든 선박들을 대상으로 한 보편 탄소세 부과 방침을 철회하고 부분 탄소세를 시행하기로 했다.

부분 탄소세로는 글로벌 해운업계가 애초 약속했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제해사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각국의 정책적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평가된다.

14일 관련 외신 보도와 국제기관 발표 등을 종합하면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해사기구 제83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가 당초 계획했던 보편 탄소세에서 '한 걸음' 물러서 부분 탄소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번 회의에서 참여국들은 선박의 대기오염 방지 대책을 규정하고 있는 ’국제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6번 부속서(Annex 6)를 개정하는 것에 합의하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초안을 내놨다.

이번 초안은 다가오는 10월 MEPC 임시회의를 거쳐 공식적으로 채택돼 2027년부터 시행된다. MARPOL 규정에 따라 16개월 이후인 2028년부터 효력을 갖게 된다. 세부 이행 규정은 2026년 4월에 열리는 제84차 MEPC에서 협의돼 승인될 것으로 계획됐다.

이번 MARPOL 개정안은 전 세계에서 운항하는 무게 5천 톤 이상 선박이 지정된 기준치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했을 때 1톤당 380달러(약 54만 원)를 탄소세로 부과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존에 국제해사기구가 보편 탄소세를 추구하던 것에 견주면 대폭 물러선 셈이다. 일부 선박들에 일정 조건에서만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앞서 2023년 국제해사기구는 처음 탄소세 시행안을 결의했을 때 보편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내놨다. 모든 선박에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해 일괄적으로 탄소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보편 탄소세 안건은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등 주요국들의 주장으로 참여국 찬반투표가 진행돼 폐기됐다. 그동안 보편 탄소세 시행을 강력히 주장해온 태평양 도서국들은 항의 차원에서 해당 투표에 불참했다.

투표에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미국도 보편 탄소세가 무산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됐다.

앞서 8일(현지시각) 미국은 보편 탄소세 시행에 반대하기 위해 MEPC 불참을 선언하고 다른 참여국들에 서한을 보내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미국 국무부는 국제해사기구에 “이같은 불공정한 조치가 시행된다면 우리 정부는 미국 선박에 부과되는 요금을 상쇄하기 위한 상호주의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편 탄소세가 부분 탄소세로 대체됨에 따라 해운 탄소세 시행으로 발생하는 수입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앞서 세계은행는 지난해 보편 탄소세가 시행된다면 시행 연도부터 매년 최대 600억 달러(약 86조 원)의 수입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이번에 조정된 부분 탄소세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수입은 연간 약 400억 달러(약 57조 원) 수준에 불과했다.

국제해사기구는 해당 수입을 친환경 연료 연구 및 도입, 기온상승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 연구 및 대책 마련, 개발도상국 기후적응 지원 등에 사용할 것으로 계획한 만큼 글로벌 기후대응도 그만큼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조치가 글로벌 해운업계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로이터를 통해 “이번 조치가 의미 있는 한걸음이나 파리협정에 명시된 기후변화 해결이라는 목표에는 부합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파리협정은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5도 아래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약이다. 파리협정에 가입한 국가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늦으면 2060년, 이르면 2050년까지 모든 산업 분야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했다.
 
글로벌 선박 '보편 탄소세'에서 '부분 탄소세'로 후퇴, 한국도 대응 과제 남아

▲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항구에서 한 컨테이너선이 선적품을 가득 실은 채 출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아쉬움이 많지만 국제해사기구가 여러 난항 속에서도 글로벌 해운산업 전체에 걸쳐 적용되는 첫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도입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해당 조치는 온전히 이행된다고 해고 국제해사기구가 약속한 '2050년 글로벌 해운분야 탄소중립' 목표는 달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럽 교통환경 싱크탱크 ’T&E(Transport & Environment)’에 따르면 이번 부분 탄소세는 온전히 이행된다고 해도 해운분야의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2008년 대비 10% 감축하는 것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국제해사기구는 앞서 2023년에 해운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 감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에 기후솔루션은 10월에 열리는 넷제로 프레임워크 최종 채택 과정에서 최대한 세부 규칙을 강하게 조정하고 실효성 있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등 국제해사기구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국들이 자체 정책을 활용해 강력한 탄소 감축 정책을 시행하고 친환경 연료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후솔루션 관계자는 “정부는 비화석연료 선박이 다니는 녹색해운항로 확대를 위한 지원을 더욱 강화해 국내 해운사들의 탄소세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향후 비화석연료 선박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국내 조선소 지원을 늘려 미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 역시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탄소중립을 위한 항로는 이제 막 열렸다”며 “하지만 그 항로를 끝까지 완주하기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이고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정교한 설계와 흔들림없는 실행이 뒤따라야 2050 탄소중립 목표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