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K그룹 리밸런싱에 알짜 SK실트론도 포함돼 그 배경이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반도체 소재 계열사를 두고 있으면 공급망 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투자 부담이 크고 업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수직계열화 대신 유망한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지분을 인수해 공급망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9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SK가 리밸런싱 대상으로 SK실트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SK그룹의 반도체 사업 전략에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SK실트론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로, 최태원 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그룹 내에서도 핵심 계열사로 꼽혀왔다.
SK그룹은 2016년 반도체 가스회사 SK머티리얼즈, 2017년 웨이퍼 전문 회사인 SK실트론을 차례로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 수직계열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SK실트론의 매출은 2017년 9331억 원에서 2024년 기준 2조1268억 원으로 배 넘게 성장했으며, 지난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도 6400억 원에 달한다. 기업가치는 약 5조 원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SK가 SK실트론은 지분 51%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수익스왑(TRS) 방식으로 지분 19.6%를 갖고 있다. 최 회장도 개인적으로 TRS로 SK실트론 지분 29.4%를 보유하고 있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반도체 사업 수직계열화를 포기하는 대신 글로벌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에 투자해 안정적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SK >
SK 측은 이날 “SK실트론에 대한 지분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
SK그룹은 지난해부터 ‘리밸런싱’을 진행하면서 이미 반도체 사업을 개편해왔다.
SKC의 반도체 소재사업 전문 자회사 SK엔펄스는 올해 4월1일 반도체 평탄화 공정용 핵심부품인 CMP패드 사업을 한앤컴퍼니에 3410억 원에 매각했다. 2023년에는 반도체 기초 소재인 웨트케미칼 사업과 세정 사업을 중국에 매각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3월 CMOS 이미지센서(CIS) 사업에서 손을 떼고, 관련 인력을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 분야로 전환하기도 했다.
웨이퍼 제조, 기초 소재, 이미지센서 등 기존 반도체 사업을 일부 정리하면서, 그동안 인수합병(M&A) 통해 구축해온 수직계열화 고리가 약해진 것이다.
이를 두고 수직계열화 대신 협력사에 일부 지분을 투자해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는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수직계열화는 공급망 안정성 확보, 원가경쟁력 강화 등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야 하고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최근 모든 공정을 내재화한 종합반도체제조(IDM)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기업이 경쟁우위를 보이는 추세다.
만약 SK가 SK실트론 지분을 매각한다고 해도 여전히 최 회장이 SK실트론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의 웨이퍼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SK그룹이 반도체 웨이퍼 제조 계열사 SK실트론의 경영권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 SK실트론 >
최 회장은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포기하는 대신 매각을 통한 투자자금을 확보, 유망 반도체 소부장 기업과 인공지능(AI) 플랫폼에 투자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SK의 투자 전문 자회사 SK스퀘어는 AI·반도체 신규 투자를 위해 최근 전담 조직을 강화하고,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회사는 조만간 투자 기업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SK그룹은 실리콘카바이드(SiC) 기반 전력반도체, 반도체 유리기판 등 차세대 반도체 사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핵심 사업부문의 수직계열화를 통해 SK그룹의 ‘퀀텀점프’를 이뤄왔고, 그 가운데 반도체가 가장 성공적이었다”며 “다만 반도체는 업황에 따라 실적변동이 큰 데다, 각 분야 투자부담도 커지고 있는 만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