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 투자 전쟁에 한국만 뒷걸음질, AI 업계 대선 앞두고 '투자 골든타임' 한목소리

▲  2024년 세계 각국 인공지능(AI) 민간 부문 투자액 현황.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AI연구소>

[비즈니스포스트] 세계 각국이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AI 주도권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투자 규모나 정책적 지원 측면에서 이들 국가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치권도 AI 관련 투자 확대를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놓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단순한 예산 증액을 넘어 종합적 정책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9일 한국인공지능협회는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이 AI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비전과 구체적 실행 전략을 담은 공약 제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지지 서명을 받고 있다.

협회는 한국이 미국, 중국과의 AI 기술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5년간 매년 100조 원, 모두 500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4%에 해당하는 규모로, 정부가 2024년 9월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출범식에서 발표한 2027년까지 모두 65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보다 약 7.7배가량 큰 금액이다.

이 같은 협회의 요구는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이 기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현재 수준의 투자만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이성래 협회 수석팀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범용인공지능(AGI) 시대를 주도하기엔 아직도 (투자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한국이 기술 격차를 초고속으로 극복하고, 단순한 추격자가 아닌 AGI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국가 차원의 AI 투자가 필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약 710조 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 중이며, 중국도 이미 수천억 달러 규모의 국가 주도 AI 투자를 집행하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8일 발표한 ‘딥테크 10대 분야 벤처투자 동향’을 통해 지난해 국내 AI 분야 벤처 투자액이 9694억 원으로 전년 대비 75.1%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스탠퍼드대학교가 발표한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AI 민간 부문 투자액은 13억3천만 달러(약 2조 원)로, 미국의 1099억8천만 달러(약 161조6천억 원)의 1.1% 수준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전년 대비 4.3% 감소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과 격차도 상당하다. 민간 부문 기준으로 중국 AI 투자액은 92억9천만 달러(약 13조 6천억 원)에 달하며, 한국은 이에 비해 약 7분의 1 수준이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바이두의 AI 투자액은 42억 위안(약 8437억 원)에 달했으며,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각각 230억 위안(약 4조6천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AI 투자 전쟁에 한국만 뒷걸음질, AI 업계 대선 앞두고 '투자 골든타임' 한목소리

▲ 국내 AI 업계는 AI 투자 증액뿐 아니라 종합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한국인공지능협회의 대한민국 인공지능 선도국가 실현을 위한 10대 공약 제안서 발췌. <인공지능협회>

AI 산업 활성화가 국가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주요 정치인들도 잇따라 투자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단순히 AI 산업을 지원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직접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내세우고, 국가 차원의 투자 확대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AI 투자 확대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예산 증가를 넘어서는 종합적 정책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인공지능협회는 정부가 미국과 중국 등 세계 AI 경쟁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선 △대통령 직속 AI 콘트롤타워(인공지능 수석실) 설치 △차세대 AGI 개발에 대한 집중 투자 △AI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규제 완화와 적극적 벤처 생태계 지원 △AI 전문 인력을 향후 5년 내 100만 명 규모로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협회 이 팀장은 “종합적이고 강력한 정책적 접근만이 미국과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국내 AI 업계 관계자는 “AI와 양자 기술에 대한 예산 자체가 너무 적고, 미래 전략기술에 대한 정책도 부족해 정부 차원의 보다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우리나라 예산 규모나 편성 여건이 해외 주요 국가에 비해 부족한 만큼,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예산뿐 아니라 인력 양성 등 종합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AI 칩(GPU)을 해외에서 확보한다고 해서 AI가 곧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중국이나 미국처럼 정부가 중심이 돼 전방위적으로 생태계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승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