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세미텍 SK하이닉스 1차 HBM 장비 공급사 되나, SK와 한미반도체 갈등에 반사이익 전망

▲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장비 공급망에서 입지를 넓혀갈 기회를 잡았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오른쪽)이 2025년 2월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5'의 한화세미텍 부스를 방문해 질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의 핵심 장비인 ‘열압착(TC)본더’ 공급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TC본더 후발주자인 한화세미텍에 반사이득이 돌아갈 전망이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무보수로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까지 맡으면서 반도체 장비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TC본더 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한미반도체가 한화세미텍의 TC본더가 자사의 특허를 도용해 개발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경쟁구도에 변화가 생길 여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장비 TC본더의 ‘멀티 벤더’ 전략을 고수하면서,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사이에 발생한 균열이 쉽게 봉합되지 않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는 8년 동안 TC본더를 거래해온 ‘HBM 동맹’이다.

TC본더는 열 압착 방식으로 가공이 끝난 칩을 회로기판에 부착하는 반도체 후공정 장비다. HBM의 수직 적층 패키징에 필수 장비로, 한미반도체가 2017년 처음으로 국산화에 성공해 SK하이닉스에 독점 공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TC본더 공급사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동맹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3월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에 420억 규모의 TC본더 12대를 주문하자,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 HBM 생산라인에 파견했던 TC본더 유지보수 인력을 모두 철수시켰다. 또 TC본더 가격 28% 인상을 통보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은 3월17일 보도자료를 통해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받은 한화세미텍도 결국에는 유야무야,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며 한미반도체와 기술격차가 크다는 점을 주장했다.

곽 회장의 이례적 반응 뒤에는 한화세미텍과 법정 분쟁이 자리하고 있다.

한미반도체 측은 2024년 12월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TC본더 장비 관련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한화세미텍 TC본더 신제품이 2017년 한미반도체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듀얼 모듈 4개 본딩 헤드’ 방식의 특허를 침해해 개발됐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화세미텍 측은 해당 기술이 범용적이고, 이미 해외에서도 유사한 방식이 제품이 출시된 만큼 특허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화세미텍 SK하이닉스 1차 HBM 장비 공급사 되나, SK와 한미반도체 갈등에 반사이익 전망

▲ 한화세미텍의 TC본더 'SFM5-엑스퍼트'(왼쪽)와 한미반도체의 HBM용 TC본더 장비. < 한화세미텍, 한미반도체 >

이 같은 갈등 속에서 SK하이닉스는 올해 4월 말 최대 50대(약 1500억 원 규모)의 TC본더 기기를 추가로 주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의 관계가 최악의 수준이 된 현재, 한화세미텍이 SK하이닉스의 1차 HBM 장비 공급사로 올라설 기회를 얻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증설 계획을 고려할 때 TC본더 예상 구매 규모가 올해 약 60대, 2026년 약 120대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화세미텍의 예상 공급 대수는 올해 45대, 2026년 90대 수준으로, 경쟁사 대비 TC본더 점유율 우위(75%)를 점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증권사 맥쿼리도 최근 한화세미텍의 SK하이닉스 공급망 진입을 반영해 한화세미텍 모회사인 한화비전 목표주가를 기존 5만8천 원에서 8만6천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한화세미텍은 그룹 차원에서 대대적 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막내아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을 맡아, 고객사 확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를 두고 향후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김동선 부사장의 신사업 강화 움직임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4월4일에는 500억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신규 투자 자금도 수혈했다. 한화세미텍이 발행하는 신주는 모두 한화비전이 취득한다.

다만 한화세미텍의 공격적 사업 확대 움직임은 향후 한미반도체와 특허권침해금지 소송 결과에 따라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남아있다.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최악의 경우 향후 TC본더 납품 금지는 물론, 이미 고객사에 납품한 장비도 빼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TC본더 공급사를 다각화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한화세미텍에 기회가 온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기술력을 입증한 한미반도체가 아직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며, 한화세미텍은 특허 관련 위험요소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