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다' 조롱받던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 시프트업 어떻게 글로벌 게임업계 뒤집었나

▲ 이기헌 상장회사협의회 상근부회장(왼쪽부터), 정석호 한국IR협의회 회장, 양태영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이사,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이성 NH투자증권 IB1 총괄대표, 하진수 JP모간증권 서울지점장이 2024년 7월11일 시프트업 상장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비즈니스포스트] 창세기전3, 마그나카르타, 블레이드 앤 소울. 

국내 게이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 게임들의 공통점은 바로 김형태 시프트업 대표이사가 일러스트를 맡아 그렸던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김형태라는 이름은 1990년대부터 게임을 즐겨온 ‘코어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결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김 대표는 창세기전 시리즈와 마그나카르타 등 당대를 대표하는 국산 롤플레잉게임(RPG)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알린, 국내 게임업계에서 보기 드문 ‘스타 일러스트레이터’다.

국산 싱글 PC게임들의 몰락 이후 엔씨소프트에 입사해 블레이드 앤 소울의 총괄 아트 디렉터를 맡았다. 

김형태 대표는 블레이드 앤 소울 개발 당시에도 독특하고 도발적인 그만의 아트 스타일을 고수했고, 이 때문에 김택진 엔씨소프트 창업주와 자주 충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엔씨소프트를 나온 그는 자신만의 게임 스튜디오 ‘시프트업’을 설립했고, 첫 작품인 데스티니 차일드를 통해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입성했다. 

이 게임은 일정 수준의 흥행 성과를 올리며 시프트업의 존재감을 알렸고, 뒤이어 출시한 ‘승리의 여신: 니케’는 한국은 물론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이후 김형태 대표는 AAA급 콘솔 액션 게임 ‘스텔라블레이드’까지 글로벌 흥행에 성공시켰고, 이 기세를 몰아 시프트업은 2024년 7월12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 야한거 많이 그려서 취향 갈리는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는 어떻게 시프트업을 키웠나

김형태 대표에게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선정성 논란’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시절부터 이어져온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항상 “야하다”, “도발적이다”는 평가와 함께 적잖은 비판을 불러왔다. 

니케 역시 노출이 많은 캐릭터 디자인을 이유로 논란의 중심에 섰고, 시프트업의 첫 작품인 데스티니 차일드 역시 여성 캐릭터들의 선정성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적 있다.

김형태 대표 역시 자신을 향한 이런 평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데스티니차일드의 일러스트 관련 논란 당시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는 인체 많이 틀리고 야한거 많이 그려서 취향도 갈리곤 하는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 중 한 명”이라며 “즐겁게, 열심히 그려나갈테니 아쉬울 때가 있더라도 계속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선정성’ 논란이 역설적으로 시프트업의 다음 행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스텔라블레이드 이야기다.

◆ 선정성이 오히려 무기가 되다, 반전을 만든 스텔라블레이드

니케의 성공 이후 김형태가 진두지휘한 스텔라블레이드는 콘솔 기반의 AAA급 액션 게임이다. 개발 도중 소니와 1년 동안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5 콘솔로만 독점 출시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는데, 이와 관련해 소니가 스텔라블레이드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스텔라블레이드는 출시 직후부터 글로벌 게임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려한 그래픽과 타격감, 김형태 대표 특유의 미학이 담긴 캐릭터 디자인, 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은 유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스텔라블레이드는 글로벌 게임 평가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유저 평가 9.2점을 기록했다. 이는 ‘발더스게이트3’,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 ‘갓 오브 워’ 등과 같은 게임업계의 역사를 바꾼 소위 ‘명작’들과 비슷한 수준의 유저 평가다. 

재미있는 점은 압도적 수준의 유저 평가와 달리 평론가 점수(메타스코어)는 81점으로, 절대적 명작 반열에는 못 미치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유저 평가와 평론가 점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 것은 김형태 대표 특유의 ‘스타일’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글로벌 대형 게임회사들이 재미라는 게임의 본질보다 교조적 ‘정치적 올바름(PC)’에 집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유비소프트, 미국의 블리자드나 바이오웨어, 너티독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형태 대표 특유의 ‘야하고, 예쁘고, 과감한’ 비주얼이 오히려 게임 이용자들에게 신성한 해방감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결국 게임 이용자들의 입장에서는 스텔라블레이드가 ‘무엇이 허용되고 금지되는가’를 두고 벌어진 문화 전쟁의 전장에서 자신들을 대표해 싸워준 셈이다.  

물론 스텔라블레이드가 단순히 자극적 비주얼로만 성공한 게임은 아니다. 스텔라블레이드의 성공은 서정적이면서도 감각적인 OST와 비극적 서사, 타격감을 극대화 한 전투 시스템 등이 비주얼과 어우러지면서 나온 결과였다. 

스텔라블레이드의 아트스타일이 서브컬처와 친화력이 높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캐릭터기반 게임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스텔라블레이드의 성공이 시프트업에게 단순히 ‘게임 하나’가 성공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 과감한 김형태의 스타일, 지나친 성상품화 논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형태 대표의 스타일이 ‘성상품화’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의 게임리뷰전문사이트 IGN프랑스의 게임전문기자 벤 오솔라는 스텔라블레이드의 주인공인 ‘이브’를 두고 “여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그린, 성적인 측면이 강조된 인형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IGN프랑스의 편집장 에르왕 라플뢰리엘은 이 리뷰의 댓글에 “지나친 성적 대상화'를 '섹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 신청교도여 영원하라”고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이 리뷰는 세계 게임 이용자들의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고, 유부남인 김형태 대표를 ‘여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한 것을 두고 조롱하는 반응도 나왔다. 결국 IGN프랑스는 이 리뷰와 관련해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시프트업 역시 이런 비판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스텔라블레이드의 출시 이후 실제 게임에 적용된 이브의 의상이 처음에 공개되었던 것과 비교해 노출 정도가 상당히 감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야하다' 조롱받던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 시프트업 어떻게 글로벌 게임업계 뒤집었나

▲ 스텔라블레이드로 일약 글로벌 게임 제작사로 떠오른 시프트업이 스텔라블레이드의 유료DLC, 스팀 출시, 차기작 프로젝트 위치스 등으로 '넥스트 스텔라블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스텔라블레이드의 PC버전 출시 홍보 이미지. <시프트업>

 ◆ DLC와 차기작까지, 김형태의 시프트업은 이제 시작

김형태 대표와 시프트업은 현재 ‘넥스트 스텔라블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텔라블레이드의 유료DLC(다운로드콘텐츠), 스팀(PC플랫폼) 출시가 눈 앞에 있고, ‘프로젝트 위치스(가칭)’라는 차기 AAA급 게임도 공개했다. 니케도 최근 중국 시장에 출시됐다.

김형태는 한때 ‘야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던 일러스트레이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글로벌 콘솔 시장에서 주목받는 게임사의 대표다.

김형태 대표는 여전히 대담하고 도발적이지만 동시에 진지하고 서사적 감정선을 통해 시프트업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김형태 대표는 예전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던 인물”이라며 “시프트업이라는 회사의 정체성이 김형태 대표의 스타일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