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기획재정부(기재부)가 17년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각종 대선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재부 개혁'을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 왕 노릇' 기재부 개혁 추진 이재명, 17년 만에 예산·재정 기능 쪼깨지나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기획재정부 개혁을 벼르면서 기획재정부의 기능과 조직이 17년 만에 크게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재명 후보가 28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열린 AI 메모리반도체 기업간담회에서 자료집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야권은 기재부가 ‘예산’과 ‘재정’ 기능을 모두 쥐고 있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정권교체가 이뤄졌을 때 기재부 기능과 권력이 쪼개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오는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획재정부 개혁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발언이 기재부 개혁 논의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재부를 두고 “정부 부처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상당히 있다”며 “지나치게 권한이 집중돼서 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발언이 나온 직후인 4월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토론회를 개최해 ‘기재부 힘 빼기’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민주당이 기재부 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는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 들어 기재부가 고집한 '재정건전성' 기조 탓에 재정 투입 시기를 놓치고 경제 회복을 늦춘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확장재정'을 강조하는 이 후보의 정부재정 집행 기조와 정면으로 어긋난다. '나라 곳간지기'를 자처하는 기재부의 힘이 강할수록 지역화폐 등 재정집행의 과감성과 신속성이 필요한 이 후보의 각종 정책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 개혁 방안으로는 조직 분할이 가장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예산 편성’(기획) 기능과 ‘재정 운용’(재정) 기능을 모두 쥐고 있는데 기능을 분리하자는 것이다.

세금을 걷는 기능과 세금을 쓰는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을 각각 둠으로써 서로 견제가 가능하게끔 만들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민주당 토론회에서 "지금의 기재부는 기획이 아닌 정부 예산의 팽창을 막는 관리의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며 "기재부 독재라 비판받는 기재부의 분리는 시대적인 요구"라고 강조했다.

기재부 장관 출신인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제가 기재부 출신이긴 하지만 기재부는 재정 기능을 떼어낸 재정 부분과 기획예산처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는 법안도 이미 발의돼 있다. 
 
'부처 왕 노릇' 기재부 개혁 추진 이재명, 17년 만에 예산·재정 기능 쪼깨지나

▲ 기획재정부 분할 법안을 발의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기형 의원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을 담당하고 재정경제부는 국고를 총괄하는 기능을 맡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조국혁신당에서는 아예 재정 집행 기능을 대통령실로 옮기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회 기재위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4월30일 기재부 개혁방안 기자회견을 열어 기재부 내 예산실 기능을 대통령실 산하 예산처로 이관하자고 주장했다.

차 의원은 “기재부가 예산 편성 권한을 틀어쥐고 재원 배분이 달라지지 않아 정작 시민들의 삶은 바뀌지 않는 ‘기재부의 나라’를 완전히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재정 상황이 악화된 데다 국가부채가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재부가 '곳간지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의 기재부 개혁 추진과 관련해 "국가 재정의 안정성, 경제정책의 일관성, 그리고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폭거"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기재부뿐 아니라 더 작은 하위조직도 재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기재부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면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막을 수가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고려하면 기재부 개혁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재부가 윤석열 정부 집권기에 경제성장률이나 잠재 성장률을 높이지 못했으면서도 경기부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요구에는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에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회 기재위 소속 야권 의원실 관계자는 “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하는가를 결정하는 게 정치인데 기재부가 과도하게 이를 막아온 측면이 있다”며 “기재부가 정부 부처로서 정치적 결정에 따르는 하향식(Top-down) 구조로 재편해야 할 필요가 높다는 것에는 많은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역대 정부에서 조직 분할과 통합이 여러 번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가 재정과 예산 연계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1994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하자 '공룡 부처'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재정경제부로 축소하되 산하에 차관급 예산청을 따로 뒀다.

그러나 다시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정책 기획·조정 기능 분산으로 떨어진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두 부처를 통합하면서 현재의 기재부가 탄생했다. 만일 이재명 후보가 집권해 기재부를 개혁한다면 17년 만에 다시 쪼개지는 셈이 된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