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생명 ABL생명 합치면 직원 1700명 육박, 우리금융 '구조조정' 없이 인수 가능할까

▲ 동양생명과 ABL생명 노동조합과 임직원이 15일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고용 보장과 보상방안 제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단순히 (생명보험이라는) 업권이 같다는 이유로 중복 인력이 발생해 강제 구조조정에 휘말릴까 봐 직원들의 불안감이 큽니다.”

동양생명과 ABL생명 노동조합(노조) 지부장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이 끝나고 기자들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이들은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을 호소했다. 회견장에 내건 현수막엔 ‘직원 고용 보장, 보상방안 제시 촉구’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금융지주의 인수 시도를 겨냥한 '선제적' 의사 표시였다. 이날 회견이 '선제적'인 이유는, 인수 관련 금융위원회(금융위)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의 동양생명·ABL생명 인수와 관련, 가장 최근의 금융위 논평은 "안건소위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수 확정이 되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과거 유사한 인수합병 사례에서 발생한 구조조정이 재연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2020년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을 인수했다. 희망퇴직이 있었다. 신한금융은 ING생명을 인수한 뒤 2021년 신한라이프를 출범시키면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둘 다 거대 금융지주의 보험사 인수 케이스였다. 구조조정을 피해가지 못했다. 

더욱이 우리금융이 추진하고 있는 자회사 편입은 동양생명·ABL생명 두 보험사를 대상으로 한 '패키지 인수'다. 두 회사의 임직원 수를 합치면 1700명에 육박한다.  단순 비교하자면, 다른 금융지주사 산하 생명보험사 직원 수의 2배를 웃돌기도 한다.  

노조 측은 금융위와 우리금융지주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두 회사 노조는 이날 “현재 동양생명과 ABL생명 주인인 중국 다자그룹과 인수를 추진하는 우리금융지주는 노조의 대화 요구에 원론적 답변으로 대응하거나 무시하고 있다”며 “금융위원회에도 책임감 있는 인수 승인 검토를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노조는 2024년 6월 우리금융이 동양생명과 ABL생명 패키지 인수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직후인 2024년 7월에도 고용 보장과 노조와 긴밀한 소통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금융위가 빠르면 4월 안에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를 조건부 승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보도 등이 나오며 재차 기자회견을 연 것으로 보인다.

이번 동양생명과 ABL생명 노조의 조기 대응은 앞서 다른 금융지주사인 KB금융과 신한금융이 생명보험사를 인수할 당시 사례를 의식하고 고용보장을 선제적으로 요구해 교섭력을 더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KB금융은 2020년 4월10일 푸르덴셜생명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해 합병을 추진했다.

매각 추진 당시부터 이어진 푸르덴셜생명 임직원의 고용불안 목소리에 2020년 4월10일 당시 푸르덴셜생명 대표인 커티스 장이 직접 임직원 대상 메시지를 보내며 인수 조건에 ‘고용승계’가 포함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인수 위로금 책정과 자회사 편입도 상대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됐다. 푸르덴셜생명은 2020년 8월31일 KB금융에 공식 편입 뒤 2023년 KB생명과 통합한 통합법인 KB라이프가 출범했다.

신한금융이 ING생명을 인수할 당시엔 노조와의 갈등이 화제가 됐다.

2018년 ING생명 노조는 신한금융의 인수 발표 직후부터 고용보장뿐 아니라 경영의 독립성 유지도 함께 요구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결국 신한금융은 인수 초기 ING생명을 오렌지라이프라는 별도 법인으로 유지하며 조직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점진적으로 노사 갈등을 최소화한 뒤 신한생명과 통합을 추진하며 2021년 신규 법인 신한라이프가 출범했다.

두 사례 모두 금융지주사에 인수됐고 이번 동양생명, ABL생명과 마찬가지로 두 생명보험사를 통합한 법인을 출범시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동양생명 ABL생명 합치면 직원 1700명 육박, 우리금융 '구조조정' 없이 인수 가능할까

▲ 15일 기자회견에서 최선미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동양생명보험지부 지부장(왼쪽 2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에서 모두 합병 전후 구조조정이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동양생명과 ABL생명 직원들 역시 동일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생명보험’이라는 같은 업을 영위하는 두 회사를 통합한다는 건 중복 인력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푸르덴셜생명의 경우 2020년 9월 KB금융에 인수된 뒤 2020년 12월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KB생명 인원은 푸르덴셜생명 인수에 앞서 2020년 7월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2021년 7월 합병된 신한라이프 출범 전 오렌지라이프(ING생명)와 신한생명에서도 희망퇴직이 이뤄졌다.

특히 동양생명과 ABL생명 임직원 수는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 기준 각각 937명, 752명으로 모두 합쳐 1689명에 달한다.

단순 합산 기준이지만 다른 금융지주사 산하 생명보험사(신한라이프 1550명, NH농협생명 1044명, KB라이프 716명)와 비교하면 많은 인원이라 인수 뒤 구조조정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향후 사업의 안정성을 고려했을 때 우리금융지주가 노조와 원활한 합의를 진행해 고용 보장 문제를 해결하려 할 수 있다.
 
동양생명 ABL생명 합치면 직원 1700명 육박, 우리금융 '구조조정' 없이 인수 가능할까

▲ 우리금융지주가 고용 보장 문제 관련 원활히 합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할 당시에도 대부분의 구성원을 고용승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리금융지주가 오랜 시간 보험사 인수에 공들여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사 협상에도 힘쓸 가능성이 있다.

출범부터 노조와 불협화음이 발생하면 보험업 확장을 꾀하며 준비해 온 사업과 기존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추구에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수 자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14일 보도설명자료를 내며 “우리금융지주의 동양생명, ABL생명 자회사 편입 승인은 금융위 안건소위에서 논의하고 있다”며 “결정 시기는 확정된 바 없다”고 강조했다.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