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실업 베트남 관세 '리스크 헷지', 김익환 중남미·미국 생산으로 선제 대응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이사 부회장이 꾸준히 생산지역 다변화를 진행해온 결과 미국 관세 우려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세실업>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겨냥해 고율의 관세 카드를 꺼내 들자 국내 의류 제조자설계생산(ODM) 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특히 베트남 생산 의존도가 높은 한세실업이 미국 관세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만큼의 파고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김익환 한세실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미국과 중남미로 생산 거점을 분산해왔고 현재까지도 중남미 지역의 생산시설을 꾸준히 확대하며 리스크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8일 한세실업의 주가 상황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관세 정책 발표 이후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2일 1만770원이던 주가는 8일 오후 15시 기준 9850원까지 하락하며 9.1% 하락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대한 높은 생산 의존도가 관세 리스크와 맞물리며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현지시각)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각각 46%, 32%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한세실업의 지난해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85%를 넘고 베트남 생산 비중도 60% 달할 만큼 높아 관세 이슈가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베트남에 생산시설을 둔 다른 국내 ODM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기간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주가는 13.3% 하락했고 영원무역도 2.5% 떨어졌다. 

2024년 기준 한세실업의 생산지 비중은 베트남 39%, 인도네시아 18%, 니카라과 30%, 과테말라 9%, 미얀마 3%다. 생산량만 놓고 보면 단연 베트남이 ‘주력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화승엔터프라이즈와 영원무역 역시 베트남 생산 비중이 각각 47%, 26%에 이른다.

다만 일각에서는 시장의 우려만큼 한세실업이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는데, 이유는 베트남이 더 이상 한세실업의 ‘유일한 생산기지’는 아니라는 점을 언급한다. 

실제 김익환 부회장은 2022년부터 생산기지 다변화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한세실업은 2023년 과테말라에 원단 염색공장 ‘C&T 과테말라’를 세운 데 이어 지난해에는 방적공장 ‘한세 에스코핀’을 설립하며 현지 생산 인프라를 한층 더 단단히 다졌다. 관세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안전판’을 미리 마련해 둔 셈이다.

같은 해에는 미국 섬유 제조업체 '텍솔리니'를 인수하면서 ‘메이드 인 USA’ 전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텍솔리니는 뉴발란스, 챔피온, 파타고니아, 알로요 등을 고객사로 확보한 합성섬유 제조업체로 북미 시장에 대한 직공급 역량을 끌어올릴 거점으로 기대받고 있다.
 
한세실업 베트남 관세 '리스크 헷지', 김익환 중남미·미국 생산으로 선제 대응

▲ 한세실업이 인수한 텍솔리니 내부. <한세실업>


김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 힘입어 한세실업의 중남미 생산 비중도 매년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 겉으로는 베트남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둔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수년 전부터 생산 거점을 중남미로 꾸준히 분산해온 결과이다. 

그 성과는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해 기준 한세실업의 베트남 생산 비중은 39%, 니카라과와 과테말라를 합친 중남미 비중 역시 39%로 동일하다.

특히 김익환 부회장은 과테말라 공장에 수직계열화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며 향후 중남미 중심의 생산 기조를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수직계열화는 제품 기획부터 원단 생산, 봉제, 물류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생산 클러스터 안에서 통합 운영하는 방식으로, 생산 효율성과 납기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다.

이를 뒷받침하는 설비 투자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세실업은 지난 2월 과테말라에 위치한 원단 염색공장 ‘C&T 과테말라’와 방적공장 ‘한세 에스코핀’에 대해 각각 478억 원, 391억 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과테말라에 위치한 또 다른 법인 ‘더 글로벌 과테말라 미차토야’에 대해서도 663억 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단행했다. 이 법인은 2022년 10월 설립된 중남미 수직계열화 프로젝트 전담 법인으로 한세실업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올해 말 과테말라 원단 공장이 완공돼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베트남 공장에서 담당하던 일부 물량이 과테말라로 이전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세실업 관계자는 “한세실업은 동남아시아 뿐 아니라 중미 지역에도 생산 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며 “특히 낮은 관세 국가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지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지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세실업의 베트남 생산 의존도는 뚜렷하게 줄고 있다. 2021년만 해도 베트남 비중이 49%에 달했지만 현재는 39%까지 떨어졌다. 3년 만에 10%포인트 가량 빠진 셈이다. 과테말라 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내년에는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업계에서는 미국을 주요 고객으로 둔 의류 ODM 기업에게 중남미 생산이 더 이상 하나의 ‘선택지’가 아닌 ‘합리적인 해답’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과테말라와 니카라과는 미국과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체결한 국가로 각각 10%, 18%의 관세가 적용된다.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훨씬 유리한 무역 조건을 갖춘 셈이다.

여기에 지리적 이점까지 더해진다. 중남미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직접 납품하면 물류비 부담은 물론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까지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재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에 대한 관세 협상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관세 협상이 긍정적으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국내 ODM 업체들의 생산지 다변화 전략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므로 우려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한세실업 창업주인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연구개발, 품질관리, 영업 등 한세실업 내 주요 보직에서 실무를 익힌 뒤 2012년 해외지원 부서장, 2014년 품질관리(QA) 부본부장, 2017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올랐다. 2020년 1월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김예원 기자